우수상 (김요안) > 2015년 체험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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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해양안전 공모전 입상작

- 수상작갤러리

*** 우수상 (김요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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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이로운 구명조끼에 대한 생각
김요안
작년에 여수여행을 갔다. 그때 신기항에서 금오도를 오갈 때 겪은 일이다. 늦가을이었고 휴일이라서 어디를 가도 관광객이 많았다. 오전에 금오도로 넘어갈 땐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다른 쪽 항구에서부터 태워온 인원 때문인지 오후에 신기항으로 돌아오는 배엔 사람들이 득시글댔다.
마침 등산동호회에서 단체로 관광을 온 모양이었다. 모두가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고 있었다. 승선인원은 제대로 지켰겠지만 선실엔 발 디딜 틈, 정확히 말해서 앉을 자리가 없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오전에도 비슷한 인원이 배에 탔었다. 그런데도 승객이 많아 보이는 이유는 오전엔 대부분 앉아만 있었다면 오후엔 절반 정도가 누워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와 일행은 자리가 없어 한동안 갑판에 나가있었다. 하지만 바람도 차고 종일 비렁길을 걸어서인지 다리도 피곤해서 다시 선실로 들어왔다. 몇 칸으로 나누어진 비닐장판이 깔린 나무 바닥에 사람들은 옹기종기 모여 털썩 주저앉아있거나 여기저기 두서없이 벌렁 누워있었다. 뭔가 굉장히 무질서한 느낌이었다.
과연 동호회가 분명했다. 대부분의 승객들은 서로를 아는 것 같았다. 조금 과장을 하면 우리 외에는 모두가 아는 사람들 같았다. 게다가 대부분 거나하게 취해있었다. 등산을 마치고서 혹은 등산 중에 술을 먹었는지 가을홍시처럼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있었다. 개중엔 아직 채워지지 않은 술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었다. 주거니 받거니 술을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신발도 벗지 않은 채로 나무 바닥 끄트머리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있었다. 그러다 건너편에 벌어진 술판으로 넘어가는 사람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차지할 수가 있었다. 시끌벅적했다. 어림잡아 대여섯 군데에서 작은 술판이 벌어졌고, 사람들은 저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배의 엔진소리가 워낙에 컸고 실내에서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말하니 앞의 상대에게도 목소리가 잘 전달되지도 않았다.
“차로 갈까?”
내가 문을 가리키며 하는 말에 일행은 도리질을 했다.
“시끄럽잖아. 괜찮겠어?”
일행은 시끄러워도 조금 참자고 했다. 일행을 소개하자면 약간의 공황장애가 있는 동성의 친구이다. 어찌나 성격이 예민한지 이틀간의 숙박 중에 나의 코고는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해 여행 내내 푸석한 얼굴이었다. 그런데도 선상주차장에 댄 자동차에 가서 쉬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는 내 제안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차에 있다가 배가 침몰하면 어떻게 해? 여기에 구명조끼가 있잖아.”
친구는 구명조끼가 담긴 수납함을 가리키며 웃었다. 아닌 게 아니라 친구는 오전에 배를 탔을 때부터 줄곧 다양한 해난사고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승객이 배를 타면 누군가는 예측이 가능한 모든 위급상황, 하다못해 화재에 이런저런 대응을 하라는 안전교육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계속 투덜댔다.
심지어 오전에 친구는 구명조끼가 들어있는 수납함 옆에 달라붙어 앉아 있었다. 배가 출발하기 전 수납함에서 구명조끼를 직접 꺼내 사이즈를 대보기도 했다. 친구는 구명조끼 하나를 내게 들이밀었다. 여미는 단추가 떨어져있었다. 대신 빨랫줄 같은 것이 달려있었다. 아마도 단추대신 묶으라는 것 같았다.
“열악한데....... 이렇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네.”
친구는 가장 멀쩡한 구명조끼 두 개를 챙겨 그중 하나를 내게 건넸다. 그러고는 구명조끼 아래로 내려진 기다란 안전끈을 가리키며 이렇게 설명했다.
“이걸 가랑이 사이에 통과시켜서 채워야해. 이거 안 채우고 물에 뛰어들면 부력에 의해 구명조끼가 위로 솟구쳐서 몸에서 쑥 빠져나가는 수가 생기거든. 알았지?”
친구는 나를 아예 어린애 취급하며 상세히 일러주었다.
“그래, 알았다.”
나는 마지못해 구명조끼를 만져보았다. 워터파크나 행락지에서 제공되는 구명조끼와는 탄성이 달랐다. 좀 더 딱딱했고, 좀 더 견고해보였다. 문득 생각해보니 한강유람선과 보트 외엔 배를 처음 타본 나로선 해상용 구명조끼가 생소했다. 그리고 생소해서인지 이것을 내가 잘 착용할 수 있을지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런 걱정을 하다 보니 문제점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구명조끼들은 사이즈가 있는지 크기가 제각각이었는데 그 표기가 시원찮았다. 대충 눈대중으로 분간해야 했다. 특히나 체격이 큰 사람은 입을 것이 태부족이었다. 보통체격인 나만해도 입어보니 구속복처럼 상체를 옥죄는 것이었다.
“너도 작지?”
내 물음에 친구는 자기 건 넉넉하다고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상대적으로 나보다 왜소한 체격의 친구는 겨드랑이 쪽이 헐렁했다. 다시 말해 친구와 내가 바꿔 입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시간적 여유가 있고 마음이 평온할 때나 가능한 것이었다. 사람이 당황하면 평소 잘 하던 행동도 순서를 헤매는데 하물며 전혀 훈련이 안 된 행동은 어떻게 할까.
바다의 성정은 변덕스럽고, 인간은 바다의 폭력적 변화에 무력하기만 하다. 돌려 말할 것 없이 승객이 배를 떠나 험한 바다를 직면해야할 때, 즉 탈출상황에선 수납함에 쌓인 구명조끼들 중에 자기 사이즈를 눈대중으로도 살필 겨를이 있을까? 아니다.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착용이나 할 수가 있으면 그나마 다행스러워보였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친구 말대로 아무리 짧은 승선시간이라고 해도 직원의 전문적인 안전교육이 필요할 것 같았다. 최소한 구명조끼가 있는 수납함의 위치와 간단한 착용법 정도는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선상 안전교육의 부재가 무척이나 아쉬웠다.
“저기 봐라.”
친구가 가리켰다. 술판이 벌어진 곳에서 한 무리의 남녀가 구명조끼를 걸치고 깔깔대고 있었다. 그러고는 물에 빠졌을 때 자기들만 산다고 별 시답지 않은 농담 따위를 했다. 선상 안전교육의 부재에 이어 선상 승객통제의 부재에도 무척이나 아쉬움이 들었다.
아니 이젠 차라리 안타까웠다. 오전엔 승객의 안전을 담당한 선박회사의 무사안일주의에 아쉬움이 들었다면 오후엔 자기안전에 무감각하다 못해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는 음주행위를 하는 승객들에 안타까움이 들었다. 음주행위는 자칫 발생할 수 있는 해난사고와 화재상황에서도 더 큰 위기상황을 연출할 수 있는 불행의 빌미가 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우스웠다. 오전에 탔던 배에서도 만났을 것 같은 관광객들은 판이하게 달라져있었다. 오전엔 입성도 멀끔했고, 갓 로션을 바른 것 같은 단정한 얼굴로 차분하게 앉아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등산을 마치고 돌아오는 배에선 잔뜩 흐트러진 태도를 보이며 알코올로 불콰해진 낯으로 지금 이 순간 놀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처럼 흥을 내고 있었다.
만일 기관고장으로 배가 갑자기 멈춘다면 승객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그때 나는 다양한 해양사고 중에서 엔진고장을 생각해내고 상상해보았다. 시끄러운 엔진소리가 일순간 꺼져버리고 배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으면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자세한 묘사는 하지 않겠지만 단언할 수가 있다. 완곡하게 표현해도 당장 눈앞에 아수라장이 펼쳐질 것이었다.
잠시 후 배에서 내려 차로 이동한 굴 양식장에서 굴구이를 먹으면서 친구에게 내가 상상한 장면을 얘기했을 때 친구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고 해서 놀랐다. 다른 것이 있다면 친구가 상상한 해양사고는 배가 암초에 부딪혀 서서히 전복된다는 다소 비현실적인 설정이었다.
“그건 너무 나갔다. 선원들 입장에선 하루에도 몇 차례나 오가는 곳일 텐데.”
내 지적에 친구는 심각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 이미 우린 현실에선 상상하지도 못할 비현실적인 사고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잖아.”
옳은 말이었다.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해양사고가 일어날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언급하기도 미안할 정도로 비극적이라서 자제하지만 절대로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할 사고였다. 무엇보다 안전교육이나 구명조끼가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 재난과도 같은 끔찍한 해양사고였기에 참담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어쨌든 그날 나와 친구는 배를 탄 관광객들의 안전에 대한 무관심을 보았다. 미처 말하지 못했지만 사실 그날 금오도 부둣가, 배가 직접 접하는 콘크리트바닥에서 한 남자가 사진을 찍다 미끄러지는 모습도 목격했다. 콘크리트바닥은 바닷물에 잦은 침범으로 미끌미끌했고, 남자는 약간 술에 취해있었다. 여러모로 술은 안전에 적대요소이다.
승선 안전교육은 물론 승선 전 안전교육까지 필요한 실정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세상의 모든 안전교육은 불상사를 필요이상의 과민으로 예단하고 미리 염려하는 조바심의 한 종류일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현실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안전교육의 목적이란 것이 발생확률이 희박한 사건사고를 미리 예견하고 심리적으로 방비를 하는 것이기에 일견 그 지적이 맞다.
하지만 나의 마지막 얘기를 들으면 현실에서 실제로 발생하는 사고의 확률을 신뢰하는 경험론자, 아니 여태 과거가 안전했듯이 앞으로의 미래도 안전할 거라고 믿는 무사태평주의자들도 승선 안전교육의 필요성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그날 오전에 탄 배에서 생긴 일이다. 나와 친구가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 구명조끼 수납함을 열고서 몇 개인가를 꺼내 직접 살피고 입었을 때 점차 변하던 사람들의 표정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처음엔 뭐하는 짓이야? 하며 코웃음을 치며 무관심한 척하던 사람들이 조금씩 불안해하고, 급기야 우리처럼 직접 구명조끼를 확인하고서야 겨우 안심했던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선 비현실적인 사고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현실은 비현실의 입장에선 거울의 반대편 존재이다. 둘은 똑같은 형체를 가진 상대적 존재라는 뜻이다. 그리고 안전과 사고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둘은 각각 현실의 거울과 비현실의 거울에 비쳐진 상대적 존재이고 가끔 서로 자리를 바꾼다. 그만큼 생김새가 닮았다.
만일 끔찍한 재난사고가 하나의 인격체라면, 아니 인간에게 불행을 가져다주는 재미로 사는 악마가 있다면 그가 비극을 연출하면서 가장 먼저 하는 공작은 ‘현실’이라는 거울 속에 비쳐진 ‘일상적 태도’로 우리의 두 눈을 가리고 주의를 태만하게 만드는 것이리라. 우리의 생존이 지속적으로 보장받고, 우리의 인생이 계속 안전할 거라는 환영에 절대 속지 말아야한다.
한마디로 오늘 이후 당신이 배를 탄다면 반드시 구명조끼부터 점검하라는 얘기이다. 주변사람 눈치를 볼 이유가 전혀 없다. 당신의 기민한 주의가 오히려 주변을 긴장시키고, 더 나아가 모두의 안전의식을 강화시킨다. 자기 자신에 대한 세심한 안전점검은 어쩌면 타인들의 삶까지 보호해주는 귀중한 생활습관일 수도 있다. 그 무엇보다 안전에 대한 세밀한 관심은 알코올보다 더 강력한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기 때문에 삶에 이롭다.
체험수기 내용 >>
배안에서 음주행위를 하는 관광객과 대비되는 친구의 안전에 대한 조바심을 통해 선상에서 안전의식 강화 및 필요한 개선사항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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