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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해양안전 공모전 입상작

- 수상작갤러리

*** 대상 (박수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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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두 얼굴
박수열(경북 일반)
9월 끝자락 어느 토요일 아침, 바다를 만나러 가는 날이다.
바다낚시 단짝과 함께 영덕 동해바다를 향해 시골길로 난 국도를 따라 열심히 달렸다. 일상에서 지친 마음의 짐을 비우고 새 힘을 담아오는 데에 이만한 취미도 없다. 가는 길 내내 머릿속은 이미 바다로 꽉 채워진다. 승용차 창밖 너머 끝없이 펼쳐진 파란 하늘은 바다요, 조각구름은 배, 갯바위 같은 바위들, 그 위에 미역처럼 펼쳐진 덩굴나무들, 이따금 해풍처럼 가슴을 뚫어주는 시원한 바람까지….
어느새 도로 옆 표지판이 영덕군에 접어들었음을 알리고 있다. 이제 20분이면 강구항이다. 마음은 벌써 바닷가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하지만 나는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습관처럼 장비 목록과 짐들을 대조하며 확인했다.
“안전로프 있고, 구명조끼도 있고, 휴대폰 비상 단축키도 확인했고….”
“참, 자네. 응급 시에 하는 심폐소생술 방법 잘 알고 있지”
잠자코 운전에 열중하는 후배를 향해 말을 건넸다.
“에이〜 그 소리 한 번 더 들으면 백 번입니다. 정 못 믿으시면 도착해서 실습으로 보여 드릴게요. 누가 들으면 구조대원이 긴급 출동하는 줄 알겠습니다. 하여튼 선배님
안전결벽증은 알아줘야한다니까, 혹시 바다가 무서워서 그러는 거 아닙니까? 하하하.”
안전결벽증? 겁쟁이? 모두 맞는 말이다. 특히 바다를 빙산의 일각처럼 보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아는 나로서는 겁쟁이냐 안전결벽증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바다를 상대할 때는 결벽증이 필요할 때도 있고 겁쟁이가 되어야 할 때도 있다. 사실 나도 바다를 모두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예전처럼 두려워만 하지는 않는다. 다만 바다와 좋은 친구가 되는 방법을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그것도 몇 해 전 내 자식을 바다에서 잃어버릴 뻔한 아찔한 일을 겪은 후에야 겨우 깨달은 지혜랄까. 바다는 두 얼굴을 항상 지니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이 친구가 바다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는구만.
눈으로 보이는 것만 진실이 아니란 말도 있지 않는가.
내가 겪은 바다의 두 얼굴 이야기를 들으면 자네도
생각이 좀 달라질거야.” 하면서 별로 상기하고 싶지 않지만
이 겁 없는 후배에게는 꼭 들려주고 싶어서 지나간 이야기를 꺼냈다.
어린 시절 나는 낙동강 상류 강가에 위치한 시골에서 자랐다. 여름날은 친구들과 강에서 살다시피 하다보니 물에만 들어가면 돌고래처럼 내 세상이었다. 더 큰 짜릿함을 느끼려고 큰 비가 와서 물살이 센 날만 골라서 강물에서 친구들과 물놀이를 할 정도였다.
“야, 어제 뉴스에 중학생이 바다에서 물놀이하다 죽었대, 완전 바보 아냐.”
이따금씩 들려오는 익사사고 소식은 남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물을 우습게 안 것이다. 그렇게 인간 물개 행세를 하던 나의 자존심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일이 생겼다.
중학교 2학년 여름, 전교생이 영덕 장사해수욕장으로 학생해양훈련을 떠났다. 난생 처음 가는 바다였다.
“여기 동해바다는 수심이 매우 깊다.
안전수칙을 잘 지키도록, 첫째….”
그러나 나는 친구들 앞에서 나의 수영 솜씨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야, 수칙이고 뭐고 다 필요 없고
너희들은 나만 따라와. 내가 인간 물개잖냐.”
친구들을 앞서 먼 바다를 향해 멋지게 파도를 가르며 나갔다. 얼마나 갔을까 멀리 노란 안전선을 50m 정도 앞에 두고 잠시 멈춰 뒤를 돌아보았다. 친구들은 보이지 않고 사람들도 작은 점처럼 보였다. 이 정도 실력을 보여줬으니 그만 돌아가리라 생각하고 자신 있게 두 발을 바닥에 내렸다. 안전선보다 한참 앞인지라 발이 바닷속 바닥에 쉽게 닿을 줄 알았다. 그러나 발은 계속 아래로 내려가는데 바닥에 닿을 기미가 없었다.
“어어…, 왜 이래.” 순간 당황한 나머지 숨을 들이켰고 코와 입으로 물이 들어왔다. 급하게 다시 물 밖으로 올라온 후 해안가 쪽으로 한참을 팔을 휘저은 후 다시 발을 내려 보았다. 역시 소용이 없었다. 해안가 쪽으로 헤엄을 친다는 것이 당황한 나머지 제자리에서만 버둥거렸던 모양이다. 그렇게 다시 두어 번 더 허우적대고 나니 온 몸에 힘이 빠지고 파란 하늘이 내 눈에는 노랗게 보였다. “사람 살려” 소리를 질러보았지만 너무 멀었다. ‘이렇게 물에서도 죽는구나.’ 그 짧은 순간 가족과 친구들이 자꾸 생각났다. 하지만 이대로 죽을 순 없었다. ‘침착 침착’ 하면서 그 짧은 순간에 가장 적은 힘으로 멀리 갈 수 있는 나만의 잠수 영법을 떠올려 보았다. 시골 강에서 급할 때 써 먹던 방법이 생각났다.
우선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물속에서 몸을 앞으로 숙여 띄운 채
개구리처럼 팔다리를 앞뒤로 천천히 휘저었다.
갈 수 있을 때까지 갈 참이었다.
숨이 차오르고 힘이 빠져 더 이상 갈 수 없을 때까지 최대한 수영을 한 후 조심스레 몸을 세우고 발을 천천히 내려 보았다. 발이 바닥에 살짝 닿으면서 해수면이 턱 아래까지 차다가 멈추었다. ‘이제 살았구나.’ 하면서 앞발 든 강아지처럼 살금살금 한참을 걸어 나왔다. 해안가에는 내 모습을 본 친구들과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선생님께 평생 들을 만큼의 야단을 맞았다. 그날의 바다는 내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하이드’의 얼굴이었다.
그날 이후 물을 대하는 자세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초등교사가 된 후 누구보다 물놀이 안전에는 ‘결벽선생님’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물놀이 안전지도에 노력하였다. 학교에서 청소년단체 활동이나 바닷가 체험학습 안전은 스스로 자청하여 담당했다. 그리고 응급처치 요령이 필요할 것 같아 2007년에는 응급처치 교육을 받고 자격증도 취득했다. 이제 바다를 좀 알았다고 생각할 즈음 내 마음 속에는 자만심이 자라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런 교만이 또 한 번 무참하게 발가벗겨지는 일이 터지고 말았다. 바다는 나의 짧은 지식과 교만을 그냥 두고 보지 않았던 것이다.
응급처치 자격증을 딴 이듬해 여름방학이었다.
나와 아내는 아들 두 녀석과 부산 나들이를 다녀오는 길에 경주 대왕암 옆에 있는 해수욕장에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다. 처음부터 해수욕을 할 계획이 아니었기에 구명장비나 구급함 같은 응급처치를 위한 별다른 장비가 없었다.
“아버지, 무서워요.”
“괜찮아, 걱정마 인마. 사나이가 뭐가 무서워. 아버지만 믿어.”
당시 6학년이던 큰 아들을 구명조끼도 없이 튜브만 빌려 혼자 태운 뒤 바다를 향해 앞으로 떠 밀어 넣고 나는 아내와 작은 아들과 함께 모래밭에서 놀고 있었다. 난 수영도 자신 있고 응급처치 자격증도 있으니 내 아이 정도야 얼마든지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나친 자신감이 자만심을 낳았고 그 자만심은 교만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바다는 또 다시 ‘하이드’의 얼굴로 아들을 잃을 뻔한 엄청난 채찍을 들었다.
그렇게 평화로운 시간이 10분 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어어, 쟤가 왜 저래. 점점 멀어져 가네.”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고개를 돌려보니 다름 아닌 큰 아들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10m 이내 바로 앞에서만 노는데 아들은 튜브를 탄 채 바다 깊은 곳으로 30m 정도에서 점점 밖으로 밀려가고 있었다. 뭐라고 나를 부르는 것 같은데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당황한 얼굴이 역력했다. 동해바다의 파도 너울은 꽤 심한 편이어서 그 너울 경계를 한 번 넘어버리면 다시 돌아오지 않고 점점 멀리 밀려간다는 사실을 내가 몰랐던 것이다.
순간,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지.’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그 해수욕장은 이미 얼마 전 폐장한 후라 구조인력도 구조장비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일단 아내에게 119에 연락하라고 한 뒤 아들에게는 “아버지 갈 테니 튜브 위에 가만 있으라”고 안심시켰다. 그리고 윗옷만 벗어던지고 아들 쪽으로 정신없이 헤엄쳐 갔다.
다행히 아들은 그대로 있었고 나는 튜브를 잡고 천천히 파도 너울을 넘어서 겨우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밖에서는 이미 구경꾼이 모였다. 부자(父子) 관계를 알 리 없는 사람들은 내게 박수를 치며 칭찬해 주었지만 또 다시 바다의 진짜 얼굴을 경험한 나는 바다에게도 아들에게도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그동안 바다를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들 사건을 겪고 나면서 아직도 빙산의 일각만 보고
마치 바다를 다 본 것처럼 행세했던 것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그 동안 나는 바다 ‘선무당’이었던 것이다.
바다는 자기의 진짜 얼굴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 데도 말이다. 나 같은 바다 선무당은 이처럼 큰 희생을 치르고서야 정신을 차리는가보다. 생명을 담보로 아들을 위험에 빠뜨린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미안해진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버지도 중학생 때 영덕바닷가 해수욕장에서 말이지…….” 하면서 어쭙잖은 변명 아닌 변명으로 해양 안전교육을 하고 있자니 속으로 쓴 웃음만 나왔다. 이제 정말 더 이상의 실수는 내 스스로 용납할 수가 없었다. 소중한 생명을 희생하고 나서 바다의 진짜 얼굴을 이해한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제는 교실에서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지는 않지만 학교 안전생활을 책임지는 새내기 교감이 되었다. 안전상 사소한 문제도 그냥 넘기지 않았다. 특히 해양안전에 관한 한 내 아들을 대하듯 일일이 챙긴다. 특히 우리학교 아이들과 해양 체험학습을 떠날 때면 나의 부끄러운 예전 경험을 들려주며 잔소리처럼 사전 안전교육을 한다.
“여러분, 옛말에 접시 물에도 방심하면 빠져 죽는다고 해요. 바다는 ‘지킬박사와 하이드’라는 두 얼굴이 있지요. 보이는 얼굴보다 보이지 않는 진짜 얼굴을 잘 볼 수 있어야 바다를 안전하게 즐길 수 있답니다. 안전 수칙은 첫째,…….” 내 별명도 어느새 ‘안전벨’ 교감선생님이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하이드 같은 바다를 경험하고도 바다를 떠나고 싶지는 않다. 아니 이제는 오히려 바다가 더 좋아진다. 잔잔한 바다는 포근한 어머니 같고 파도치는 바다는 가슴을 열어주는 아버지 같아서 좋다. 본디 바다는 하이드가 아니라 지킬박사이다. 바다를 보이는 눈으로만 보는 사람에게는 ‘하이드’가 되는 것이고 바다를 겸허하게 대하는 사람에게는 ‘지킬박사’가 되는 것이다.
오늘 낚시후배와 가는 이 바다는 지킬박사의 얼굴로 우리를 맞이할 것이다. 드디어 바닷가에 도착했다. 우리의 자랑스런 동해를 향해 서서 다짐해 보았다.
대한민국 어린이 모두가 바다의 두 얼굴을 바로 알고 해양안전 강국의 자부심으로 세계의 바다를 누비는 그날까지 ‘안전벨’ 교감의 역할을 다하리라고….
체험수기 내용 >>
해수욕장에서 아들의 목숨을 잃을뻔한 예전 경험을 통해 안전의식의 소중함과 가치를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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