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상 (이성은) > 2016년 체험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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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해양안전 공모전 입상작

- 수상작갤러리

*** 우수상 (이성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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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의 그림자
이성은(광주 일반)
1994년 미국월드컵이 한창이던 초여름,
낚시광이었던 형의 제안으로 남해바다로 바다낚시를 떠나게 되었다.
해병대 입대를 앞두고 있던 내게 해병대 수색대 출신인 형은 바다사나이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주겠노라 말하며 나와 친구들을 데리고 남해바다로 바다낚시를 떠나게 된 것이었다. 기실 형과는 달리 난 낚시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트럭을 렌트하여 온갖 짐을 싣고 남해바다를 향하는 동안 형은 나와 친구들에게 해병대 경험담을 늘어놓았다. 친구들은 형의 경험담에 이목을 집중했지만, 내겐 그저 흰소리로 들릴 뿐이었다. 형의 경험담을 듣던 친구들 역시 해병대에 입대하겠다고 들까불 때면 나도 모르게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사실 난 해병대에 가고 싶지 않았다.
3시간가량 달려 도착한 남해바다의 모습은 심상할 정도로 고요했다. 인근 어촌을 찾아 우리를 돌섬으로 데려다줄 통통배를 구하던 중 마침 마을회관 앞에서 이장님과 마주쳤다.
“자네, 지금 돌섬으로 바다낚시를 가겠단 말인가”
바다낚시를 가겠다는 형의 말에 이장님이 난감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자네, 태풍이 올라오고 있단 소식 못 들었는가”
“들었습니다.”
“……들, 들었다고? 그런데도 바다낚시를 가겠단 말이야”
이장님이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물었다.
“이장님! 이래봬도 제가 해병대 수색대 출신입니다.
해병대가 그깟 태풍을 무서워해서야 되겠습니까”
형은 득의양양한 모습으로 목에 힘주어 말했다. 이장님은 당신의 큰 아 들 역시 해병대 복무 중이라는 말과 함께 형에게 정말 괜찮겠냐고 수차례 되물었다. 사실 짐을 챙겨 집을 나설 때에도 어머니는 일기예보를 통해 태풍 소식을 전해 듣고 바다낚시 가는 걸 만류하셨지만, 소싯적부터 고집불통이었던 형의 뜻을 꺾지 못하셨다. 끈질긴 형의 설득 끝에 이장님은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을 절대 지지 않겠다는 말과 함께 통통배를 이용해 우리를 돌섬까지 데려다 주었다.
난생처음 찾은 돌섬에 발을 내딛는 순간 금방이라도 거대한 너울이 덮쳐올 것만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돌섬은 우리 집 마당보다도 적어 보였다. 형은 능수능란하게 텐트를 치고 본격적으로 바다낚시 준비를 했다. 친구들 역시 잔뜩 신이 나 형의 지시에 따라 바다낚시를 준비했다. 형의 낚시 실력은 환상적이었다. 미끼를 끼운 낚시찌를 바다에 던지는 족족 바닷고기를 잡아 올렸다. 심지어 맨몸으로 바다에 뛰어 들어 자유자재로 수영실력을 뽐내는 형의 모습에 친구들은 감탄스러워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기 시작하자 돌섬에도 어둠이 찾아들었다. 그런데 잠잠했던 바람과 파도가 조금씩 거세지기 시작했다.
“형! 아무래도 태풍이 남해바다로 올라오려나 봐”
“야, 인마! 뭘 그리 걱정해! 해병대가 될 녀석이 그리 겁이 많아 되겠어!”
겁먹은 나와는 달리 형은 전혀 겁내지 않았다. 오후 내내 형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친구들도 바람과 파도가 조금씩 거세지자 겁먹은 표정으로 고시랑거렸다.
형이 끓인 매운탕으로 저녁 끼니를 때우고 텐트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하려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거세지는 바람 때문에 도통 잠을 청할 수 없었다. 또한 집 채 만한 파도가 돌섬을 덮쳐 올 때면 온몸에 털들이 쭈뼛거릴 정도였다.
“형! 이러다 정말 우리 큰일 나는 거 아냐? 점점 돌섬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기분이야!”
형 역시 저어한 표정으로 멀거니 돌풍이 휘몰아치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친구들 역시 겁먹은 표정으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형은 아침까지만 잘 버티면 되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말만 반복했다.
자정을 넘자 바람과 파도는 더욱 거세지기 시작했다. 파도가 돌섬을 내리칠 때면 거대한 물보라가 일어 텐트까지 밀려들었다. 급기야 텐트가 바람에 날려 칠흑 같은 바다 속으로 밀려들어 갔다. 우리는 돌섬 중앙 움푹 파인 곳에 모여 앉아 비를 맞으며 하루 속히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왜 그토록 시간이 더디게 가는 것인지, 일 초가 일 년 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가져온 주전부리마저 파도에 밀려 떠내려가는 바람에 배를 주릴 수밖에 없었다. 먹을 물마저 파도에 떠내려가 손으로 빗물을 받아 목을 축일 정도였다.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날이 밝아오자 비바람은 더욱 거세졌다. 세상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의 비바람과, 3층 건물 높이의 파도가 계속해서 몰아쳤다. 뿐만 아니라 돌섬이 언제 바다 속으로 수장될지 모를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한 친구는 가져온 라디오를 켜 한국과 스페인과의 월드컵 예선 마지막 경기를 청취하려 했다. 그런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월드컵 중계는 조금이나마 마음의 위로가 되었다. 스페인에게 2대 1로 몰려 후반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서정원의 극적인 동점골이 터진 순간엔 그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우린 함성을 내지르며 잠시나마 좋아했다.
날이 밝아 약속한 시각이 되었는데도 이장님의 통통배는 도통 보이질 않았다.
“상우형! 혹시 이장님 우리 데리러 오지 않는 거 아냐”
친구의 물음에도 형은 대답 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워낙 비바람이 거세고 파도가 높아 작은 통통배가 항해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을 형은 직감하고 있는 듯 보였다. 친구들은 울먹이며 형을 원망했다. 나 역시 마음으로 형을 원망했다. 죽음이라는 공포가 형과 친구들, 그리고 내게 통박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형, 저길 봐! 혹시 통통배 아냐”
친구가 가리키는 쪽을 보니 정말 작은
통통배가 거대한 파도 속에서 위태위태하게
돌섬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함성을 내지르며 통통배를 향해
손을 미친 듯이 흔들어 댔다.
통통배가 어렵사리 돌섬 근처까지 도착했지만, 워낙 파도가 거세 접안할 수가 없었다. 이장님은 돌섬 주위를 뱅뱅 돌며 접안할 위치를 모색했지만,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잘못 접안했다간 통통배가 난파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 때 형이 바다에 뛰어 들었다. 수영실력이 뛰어난 형도 파도 속에서 몸을 주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형은 혼신의 힘을 다해 친구들을 하나하나 통통배까지 이동시켰다. 마지막으로 형은 숨을 헐떡이며 날 어렵사리 통통배까지 이동시켜 주었다. 통통배에 올라 형에게 손을 내미는 순간 엄청난 파도가 밀려들어 형은 멀리 밀려나고 말았다. 이장님은 어떻게든 형을 뒤따라가려 했지만, 통통배 역시 파도에 밀려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이장님은 밧줄을 꺼내 들고 형을 향해 던졌다. 형은 사력을 다해 밧줄을 잡으려 했지만, 이미 힘이 빠져 버린 형은 점점 파도에 밀려났다.
“형! 정신 차리고 밧줄을 잡아! 밧줄을 잡으라고!”
형을 향해 소리쳤지만, 형은 의식을 잃고 그대로 바다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친구들과 이장님 역시 안타까운 표정으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안 되겠다. 우선 돌아가자!”
“돌아가다뇨? 우리 형을 두고 돌아간 단 말이에요”
이장님의 말에 종주먹을 쥐며 따져 물었다.
“이러다간 우리 모두 다 바다에 수장될 수가 있어! 우선 돌아가야 돼!”
“안 돼요! 형을 살려야 해요. 형을 살려야 한다고요!”
이장님은 내 말을 무시한 채 육지를 향해 방향을 잡았다. 난 이장님에게 매달려 형을 살려야 한다고 소리쳤지만, 이장님은 고개를 저으며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나는 형을 집어삼켜 버린 바다를 바라보며 가슴을 치며 오열했다.
매년 6월이면 난 남해바다를 찾는다.
비록 2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나와 친구들을 살리고 바다를 무덤 삼아 명운을 달리한 형의 그림자를 찾기 위해 남해바다를 매년 찾는다. 남해바다를 찾을 때면 금방이라도 형이 바다 속에서 터벅터벅 걸어 나올 것만 같다. 주검이라도 수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끝내 형의 주검은 찾을 수가 없었다. 불우한 사고로 큰 아들은 잃은 부모님의 고통은 말이 아니었다.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고 형의 주검만이라도 찾기를 고대했던 부모님을 지켜보는 것 역시 내겐 너무도 괴로운 일이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단 말이 있다. 그럴 리야 없을 것이라 마음을 놓거나 요행을 바라는 데에서 탈이 난다는 뜻으로, 요행을 바라지 말고 있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미리 예방해 놓아야 한다는 뜻이다. 20년 전, 태풍이 남해 바다로 올라올지 모른다는 말에 좀 더 귀 기울였다면 형이 그리 허망하게 바다에 수장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허나 이제 와서 후회해본들 무엇 하겠는가. 돌이킬 수 없는 것을…….
해가 뉘엿뉘엿 저물기 시작하자 남해바다는 석양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석양으로 물들어가는 남해바다를 멀거니 바라보니 저 수평선 넘어 날 향해 손을 흔들며 먼 길 떠나는 형의 그림자가 어렴풋이 보이는 듯하다. 형의 그림자를 향해 손을 흔들며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잘 가, 형!”
체험수기 내용 >>
바다에서 사망한 형의 죽음을 통해 바다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자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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