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상 (김기영) > 2016년 체험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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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해양안전 공모전 입상작

- 수상작갤러리

*** 우수상 (김기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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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과 마력 사이
김기영(서울 일반)
바다는 그 수심만큼 깊은 매력을 지녔고, 그 너비만큼이나 사람을 끄는 힘이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 거울처럼 잔잔한 바다는 햇빛을 받아 작은 화약처럼
윤슬을 반짝거리며 자글거린다.
바람이 부는 날은 또 그런 날대로 운치가 있는데, 방파제에 묶어둔 배들이 파도에 출렁거리며 깃발을 나부끼고, 먼 바다에는 봉두난발 같은 노도가 힘차게 몰려온다. 깃대가 바람을 부르듯 날이 좋으나 궂으나 바다는 사람을 부르는 힘이 있다.
매력은 때론 마력이 되는 때가 있다.
바다의 심연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면 거기 홀리는 경우가 있다. 바다를 전혀 몰랐던, 서울 토박이인 나는 그 마력에 홀려 죽음의 문턱까지 밀려간 적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이 되면 항상 할머니 댁이 있는 동해안으로 갔다. 작은 어촌이었고, 사람들은 순박하고 친절했다. ‘서울 아이’로 불리던 나는 동네 꼬마들에게 인기를 끌며 우쭐해지기도 했다.
그 동네 아이들 중에 유독 나를 졸졸 따라다니던 녀석이 있었는데, 강한 볕에 그을려 초코파이처럼 얼굴은 새까맣고, 코 밑에는 항상 콧물 자국을 묻히던 녀석이었다. 그 아이는 내가 서울말을 쓰는 게 퍽 신기하고 세련돼 보였던지, 나와 얘기하는 걸 즐거워했다.
우리는 자주 방파제에 놀러갔다. 녀석은 내 앞에서 과시하듯 빈 고깃배에 올라 어구들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리곤 했다. 그래도 되느냐고, 선장한테 걸리면 혼나지 않느냐고 내가 걱정스레 물으면 자기 아버지 배라서 괜찮다며 호기를 부리곤 했다.
녀석은 또 방파제 측면에 수북이 쌓인 테트라포드 위로 올라가 요리조리 콩콩 뛰어다니기도 했다. 나도 그렇고 녀석도 그렇고 그게 위험하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낚시하러 온 아저씨들도 거기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고, 동네 아이들도 마치 놀이터처럼 거기서 자주 놀곤 했기 때문이다. 나는 녀석처럼 재빠르지 못해 테트라포드 위를 다람쥐처럼 돌아다닐 수는 없었지만, 문제의식 없이 걸어 다니긴 했다. 간혹 물이끼가 낀 부분이 미끄러워 위험하다고 느낀 적은 있었지만, 그리 심각하게 여기진 않았다. 어른이 된 지금이야 테트라포드가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으며, 매년 추락사고가 100건 내외, 사망사고도 여러 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낚시하는 어른들조차 안전의식을 가지지 않은 그 공간은 아이들에게 놀이터나 다름이 없었다.
어찌 보면 내가 테트라포드에서 아무런 사고를 당하지 않았던 것은
그저 ‘우연’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우연히, 순전히 행운 덕에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연도, 행운도 통하지 않는 일이 곧 벌어졌다.
그것도 아주 안전하다고만 여겼던 방파제 한가운데에서.
태풍이 동해 멀리 빠져나가던 날이었다. 태풍이 저만치 물러갔다 해도 바다는 아직 엄청난 힘을 품고 있었다. 그런 날 바다는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며 산처럼 높은 파도를 솟구친다. 그 누구도 출항할 수 없어 바다는 텅 비어 있었고,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바다는 텅 빈 공간을 노도로 꽉 채우고 있었다.
녀석은 좋은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했다. 이런 날 방파제에 가면 정말 신기한 광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따라갔다. 바다에 들어가자는 것도 아니고 방파제에 가자는 것인데, 그게 뭐가 위험하단 말인가.
정말 방파제에는 분수가 솟구치고 있었다. 파도는 거인이 주먹으로 치듯 방파제를 강하게 때렸고, 그 위력은 방파제 한가운데서 분출됐다. 노후한 방파제다 보니 내부에는 여기저기 보이지 않는 균열이 있었던 것 같다. 그 틈으로 파도가 빠르게 스며들고 분수처럼 솟구쳤던 것이다.
우리는 방파제에 서 있다가 바로 옆에서 분수가 솟구칠 때마다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먹색 하늘 아래에는 아직 잠들지 않은 질풍이 바다를 휘감았고, 성난 바다는 우리를 낚아챌 듯 끊임없이 파도를 보냈다. 하지만 방파제가 우리를 지켜주었다. 우리는 방파제 위에서 안전함을 느꼈다. 게다가 방파제는 분수쇼까지 보여주지 않는가.
그렇게 그날 일이 마무리됐으면, 그래서 할머니 댁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저녁밥을 먹었으면 나는 해양안전에 대한 의식을 싹 틔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경험은 최고의 스승이고, 그 경험이 강렬하면 할수록 배움은 잊히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그 경험과 배움이라는 게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내 목숨을 노리는 파도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걸 내가 알 턱이 없었다.
균열된 방파제의 틈 사이로 솟구치는 분수에 정신을 놓고 있을 때, 엄청난 힘이 나를 덮쳤다. 그것은 지금까지 방파제를 때리던 파도보다 훨씬 거대한 파도가 일으킨 물줄기였다. 가뜩이나 노기 띤 바다는 우리의 행동에 약이 올랐던지 어마어마한 파도를 방파제 쪽으로 던졌다. 그것은 테트라포드를 타넘고, 방파제의 높은 벽도뛰어넘어, 방파제를 횡으로 가로질렀다. 파도 중 대부분은 방파제에 막혔지만, 그 중 일부가 방파제와 충돌한 후 아예 방파제 자체를 횡으로 가로질렀던 것이다. 나는 물이 그렇게 힘이 센지, 그토록 무서운지 그때 처음 알았다. 물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깨달았을 땐 이미 늦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랬다. 방파제를 타넘은 물줄기가 내 작은 몸을 가격했으니까. 나는 그 충격에 어떻게 해볼 새도 없이 방파제 옆으로 떨어졌다.
그런 날, 그런 바다에 추락하는 것은 사망선고와 마찬가지다. 혼자 힘으로 빠져나올 수도 없거니와, 누가 구출해줄 수도 없다. 물에 휩쓸려 방파제 끝으로 끌려가는 그 찰나의 순간, 내 작은 마음에도 죽음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가 파도처럼 덮쳤다.
나는 파도의 힘 앞에 아무런 저항도 못한 채 결국 방파제 측면으로 떨어졌다. 지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고, 삶과 작별하는 추락이었다. 그 짧은 순간에도 부모님 얼굴이 떠오르는 건 참 신기한 일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 이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우연’과 ‘행운’ 덕분이다.
나는 이번에도 부주의와 안전의식 부재라는 잘못을 저질렀지만,
우연과 행운이 나를 한 번 더 너그럽게 봐주었기에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내가 떨어진 곳은 바다가 아니라 방파제에 피항해둔 빈 고깃배였다. 목선의 갑판에 떨어져 어리둥절한 채로 눈을 떴을 때, 배의 깃발은 찢어질 듯 나부끼고 있었다. 그 장면이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아직도 기억이 난다. 깃발은 내게 말이라도 하는 듯했다. 봐라, 지금 바람이 이렇게 거세지 않느냐. 무슨 만용으로 여기서 놀고 있느냐.
갑판의 비린내, 물에 젖은 목선의 끈적거리는 질감, 소용돌이치듯 구름을 휘몰아치는 시커먼 하늘, 부서질 듯 요란하게 뒤뚱거리는 선체, 선측에 묶어둔 폐타이어가 방파제 벽면에 마찰될 때마다 들리는 위태로운 소리……. 나는 오감으로 공포를 느꼈다. 우연과 행운 덕에 일단 위기는 넘겼지만, 작은 고깃배에 갇혀 있는 것 자체도 또 다른 공포였다. 나는 감히 방파제로 기어올라갈 엄두도, 힘도 없었다.
정신을 차린 녀석은 내가 무사한 걸 확인하고는 해경 출장소로 뛰어갔다. 곧이어 해경 아저씨들이 달려와 나를 구조해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날 마신 바닷물보다 훨씬 많은 야단을 아저씨들에게 들어야 했다.
죽음 직전까지 가본 사람은 그 순간을 죽을 때까지 못 잊는다. 나도 그날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만약 내가 어선이 아니라 바다에 떨어졌더라면, 어선에 추락했더라도 해경 출장소가 부근에 없었더라면, 해경 출장소가 근처에 있었어도 그 아이도 나와 함께 사고를 당해 구조요청을 갈 사람이 없었더라면 나는 어떻게 됐을까. 나는 무수한 우연과 행운 덕에 아직 살아 있을 뿐이다.
그 일은 순전히 나의 부주의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그 몸서리쳐지는 경험은 내게 안전의식이라는 소중한 가르침을 주었지만, 그 수업료는 내 목숨이었다. 목숨까지 걸어가며 경험을 하기 전에, 사고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안전의식을 마음에 새기는 게 자신을 지키는 길이다. 바다는 매력 넘치는 공간이지만, 안전의식이 사라지는 순간 그 매력은 마력으로 변하는 법이니까. 바다의 힘 앞에서는 안전지대는 없는 법이니까. 안전하다고 여겼던 그 방파제가 도리어 나를 해치는 무기가 될 것이라는 걸 어떻게 예상했을까.
바다를 잘 몰라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바다를 즐기기 전에 안전의식부터 챙겼으면 한다.
바다에 놀러갈 때 수영복과 튜브 등은 챙기면서 안전의식을 챙기지 않는 것은 공수부대원이 군복은 입으면서 낙하산은 챙기지 않은 채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 것과 같다. 그렇게 조심하라고 유관기관에서 일러주고 계도함에도 끊이지 않는 해양안전사고, 이제는 부디 끝맺었으면 한다. 해양안전사고의 대부분은 사람의 부주의에 의한 인재이므로, 조심하기만 하면 그 끝은 당장 실현될 수 있다.
체험수기 내용 >>
방파제에서 떨어졌던 사고를 통하여 우리모두 해양안전에 대한 의식을 제고하자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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