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수상 (김혜순) > 2015년 체험수기

본문 바로가기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2015년 해양안전 공모전 입상작

- 수상작갤러리

*** 최우수상 (김혜순) ***

페이지 정보




본문

시골 아낙들의 위험한 갯벌체험
김혜순
10년 전 가을, 가을걷이를 끝낸 농촌의 아낙들은 미니버스 안에서 한껏 신이 나 있었다. 여름내 농사일로 바빠서 쉴 틈이 없었던 아낙들이 추수를 끝내고 미니버스를 대절해서 휴가를 떠난 참이었다. 휴전선과 맞닿은 경기도 연천, 그 중에서도 철원과 맞닿아있는 시골 마을의 부녀회원 여남은 명이 여행에 대한 기대로 부푼 가슴을 안고 미니버스에 탑승하고 있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살다보니 바다를 보는 것은 연중행사라 바다를 실컷 보고오자며 여행계획을 세웠다. 서해안을 따라 충남과 전라도를 거쳐 바다 구경을 하는 것이 그 여행계획이었다. 여행비를 아끼겠다고 밥솥이며 휴대용 가스렌지, 각종 밑반찬과 김치를 챙겨서 버스에 싣고 출발했다. 중간에 들른 포구에서 현지 식재료를 사다가 찌개도 끓이고 밥도 해 먹으며 하는 여행은 아줌마들끼리의 여행이니까 가능한 여행이었다.
여행 둘째 날 도착한 곳은 충남의 작은 마을이었다. 운전기사가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원래 가려고 했던 곳이 아닌 다른 마을에 오게 되었는데, 원래 가려던 곳보다 갯벌도 넓고 바다 보기도 좋은 곳이었다. 현지 아낙들이 갯벌에서 조개를 캐고 있었다. 드넓은 갯벌에서 조개 캐는 모습을 보더니 회원들도 조개를 캐보자는 말들이 나왔다.
바닷가 갯벌이라도 다 동네의 조합같은 곳에서 어업권을 가지고 있어서 아무나 함부로 들어가서 캘 수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 동네 사람들에게 혹시나 갯벌에 들어가서 조개를 캘 수 있냐고 물었더니 일반인들이 조개를 캘 수 있는 장소를 안내해주었다. 여름에는 체험을 원하는 관광객이 많아서 상설대여소가 문을 열지만 가을에는 동네 철물점에서 대여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철물점 주인은 우리에게 장비를 빌려주며 밀물 시간이 멀지 않았으니 다음 물때에 들어가거나 지금 들어간다면 시간 맞춰 나오라고 했다. 우리가 철물점에서 나올 때까지 몇 번이고 “아주머니들 갯벌에서 밀물은 정말 위험하니까 시간되기 전에 꼭 나오셔야해요.” 신신당부했다.
처음엔 바지락이나 조금 캐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써래처럼 생긴 도구로 갯벌을 긁었는데 백합이 한 무더기 나왔다. 해안과 먼 시골에서는 보기도 힘든 싱싱한 백합이 쏟아지자 우리 부녀회원들은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여기저기 갯벌을 몇 번만 긁어도 백합이 나오니 신기하기만 했다. 평생 산과 들에서 나물만 캘 줄 알았지 바다에서 조개를 캐본 적이 없던 아낙들이었다. 그러니 갯벌만 긁고 파면 시골에서는 돈 주고도 구하지 못할 백합이 쏟아지니 다들 그 재미에 점점 더 갯벌 깊숙한 곳으로 나가고 있었다. 철물점 주인이 일러준 시간도 잊은 채 그물망에 늘어가는 백합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갯벌에 들어오지 않은 몇 명의 아낙들이 얼른 나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제서야 조개를 캐던 우리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물이 쫘악 빠져있던 갯벌에 물이 슬금슬금 들어차고 있었던 것이다. 장화를 신은 발에는 벌써 물이 자박자박 밟혔다. 철물점 주인이 말했던 시간보다 20분쯤 지나있었다. 이제 그만 나가자며 갯벌을 나오려는데 들어올 때는 물이 다 빠져서 덜 질척이고 발이 빠지지 않았는데 물이 들어오면서 갯벌은 질척해져서 발이 푹푹 빠졌다. 뭍이라면 금방 뛰어갈 수 있는 거리인데 갯벌에서는 발이 갯벌에 푹 박혀서 한 걸음 걷기도 힘들었다.
몇 걸음 걷지도 못했는데 물은 벌써 발목까지 차올랐다. 물이 차오르는 속도가 생각보다 빨라서 그때부터 회원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장화 밑바닥에서 자박자박하던 바닷물이 발목까지 차오르니 걷기는 더 힘들어졌다. 얼마 걷지도 못했는데 물은 어느새 무릎이 있는 곳까지 차올랐다. 당황하던 부녀회회원들은 이제 공포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당황하고 겁을 내다보니 걸음은 더 늦어졌고 허둥대다가 넘어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물은 점점 차오르고 있었다.
“아이고 아주머니들 어떻게 해요. 아까 그렇게 내가 시간을 신신당부해서 알려줬는데 여지껏 거기서 뭘 하고 계신데요?”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갯벌에 나왔던 철물점 주인이 놀라서 소리쳤다. 주인은 당황하지 말고 천천히 걸어나오라고 말하고 휴대폰으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물은 어느새 무릎을 넘어서 허리까지 차올랐다. 겁을 집어먹고 한 명이 울기 시작하자 다들 이러다가 죽는거 아니냐고 울음을 터뜨렸다. 눈앞에 바로 보이는 저기까지 걸어가면 되는데 바닷물이 차오르는 갯벌에서는 그게 맘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는 분명히 뭍을 향해서 걷고 있는데 수위가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높아지고 있었고, 저기 보이는 곳까지 걸어가는데는 한 걸음 옮기는 것도 쉽지 않았다.
마을 사람 몇 명이 커다란 고무대야같은 것을 몇 개 가져오는 것이 보였다. 고무대야에 묶여있던 밧줄을 육지의 말뚝에 맸다. 그 고무대야에 한 명씩 타더니 우리 쪽을 향해서 다가왔다. 그때는 이미 물이 허리를 지나 가슴까지 차올라오고 있었다. 고무대야는 우리들이 있는 곳에서 구명튜브를 던져주고는, 부녀회 회원들을 두 명씩 대야에 태웠다. 대야에 탄 마을 사람의 손을 잡으면서도 공포로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말뚝에 매어놓은 밧줄을 잡아당겨 이동해서 안전한 곳에 내려두고는 다시 사람들을 태우러 왔다. 내가 마지막으로 탔는데 구명튜브가 아니었다면 물에 빠졌을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우리들이 마을 회관에 묵을 수 있게 해주었다. 스물스물 차오르던 밀물의 공포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우리들은 마을 회관에서도 덜덜 떨고 있었다. 저녁밥을 할 기운도 없었다. 그 마을 아낙들이 바닷물에 빠져 죽을 뻔한 우리들을 위해서 저녁을 차려다 주었다. 정말 고마운 분들이었다.
다음 날 아침, 좀 진정이 된 우리는 마을 이장님에게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 “갯벌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알아요? 여기 사람들도 항상 물때를 신경 쓰면서 갯벌에서 작업할 때는 주의를 기울여요. 철물점 사장이 시간되기 전에 나오라고 그렇게 말했다는데 왜 조심하라는 말을 그렇게 흘려듣습니까?” 이장님 앞에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살면서 바다 볼 일이 별로 없었고, 특히나 서해 바다의 밀물이 얼마나 빠르게 차오르는지 알지 못했던 우리였기에 바다의 무서움을 알지 못했다. 현지인들도 갯벌에서 작업을 하려면 날마다 바뀌는 밀물, 썰물 시간을 분 단위까지 살피면서 일을 한다는 것도 처음 안 일이었다.
우리나라 서해안은 조석간만의 차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고 한다. 갯벌에서 일하는 분들은 날짜에 따라 바뀌는 밀물 썰물 시간을 항상 체크해서 밀물이 되기 전에 작업을 마치고 뭍으로 나온다고 한다. 항상 물때에 익숙한 분들도 가끔 사고가 난다고 하니 갯벌에서 작업할 때 정확한 시간을 알고 유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마을 부녀회원들은 그걸 몸소 체험했다.
갯벌에서 작업하는 분들뿐만 아니라 서해안 관광객들도 자신이 가는 곳의 물때를 정확히 알고, 해당 지역의 안내원이나 마을 사람들이 알려주는 안전한 시간에만 갯벌에 들어가야 한다. 육지와 다르게 갯벌은 걷거나 뛰기 힘든 곳인데다가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면 눈 깜짝할 새에 차기 때문에 더욱 걷기 힘들어진다. 눈앞에 보이는 곳이라도 맘처럼 금방 갈 수 없다. 당황하고 공포에 휩싸이다보면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게 된다.
우리나라 갯벌은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 만큼 드넓고 많은 해양자원을 간직한 생명의 보고라고 한다. 특히 요즘은 갯벌 체험 등을 위해서 찾는 관광객들이 많은데 항상 가이드와 현지 주민들의 말에 따라서 안전을 지키며 체험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죽음의 고비를 넘긴 우리들은 여행을 더 지속할 수 없어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마을 분들은 돌아가는 우리에게 ‘백합 캐다가 죽을 뻔했는데 백합을 못가져가면 어떻게 하냐’며 백합을 한 보따리 선물로 주었다. 마을 이장님과 철물점 사장님은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은 우리에게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며 이해해 달라”고 했다.
올 여름엔 아들 내외와 손주들과 함께 10년 만에 그 마을을 찾았다. 10년전보다 갯벌체험장은 더 넓어졌고, 여름이라서 사람들도 많았다. 갯벌 체험장 입구에는 누구나 볼 수 있게 밀물 시간이 적혀져 있었다. 밀물 시간 30분 전에 갯벌에서 나오라는 방송이 울렸고 안전요원들이 체험장 안에 있는 관광객들을 일일이 체크해서 밖으로 안내했다. 나도 안전수칙을 지키며 손주들과 함께 양동이 하나가득 조개를 캤다. 안전수칙을 지키고 정해진 곳에서 안전하게 갯벌을 체험할 수도 있는데 10년전 우리 부녀회원들은 그 것을 잊어서 생명을 잃을 뻔했던 것이다. 안전수칙을 지켰을 때, 바다는 우리에게 무한한 자원과 즐거움을 주는 고마운 보물창고이다. 하지만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았을 때는 언제 어떻게 우리의 생명을 위협할지 모르는 무서운 곳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체험수기 내용 >>
갯벌에서 조개를 캐다가 느꼇던 체험을 통해 바닷가에서는 정해진 시간과 규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