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수상 (이재영) > 2015년 체험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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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해양안전 공모전 입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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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우수상 (이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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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안전모
이재영
이 글은 제가 실습기관사로서 GLOVIS SUMMIT호에 승선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1월 초에 처음 승선 할 당시를 기억해보면, 잘 해보겠다는 자신감과 아직 경험해보지 못 한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반반 섞인 상태였었습니다. 곧 바로 안전화, 작업복, 그리고 안전모를 받은 후 기관실로 향했습니다. 모든 기관사관님께 인사를 드리고, 첫 걸음을 때기 시작하려는 그 때 기관장님께서 제가 처음 기관실에 와보는 것이고 아직 익숙하지 않은 것이 많기 때문에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모른다며 항상 안전모를 착용하는 것을 잊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저 또한 처음이기에 어떤 사고를 당할지 모르고, 또한 기관실 내는 모두 다 철판이고, 각종 고온고압의 기기들이 대부분이었기에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했었습니다. 하지만 저를 제외한 모든 사관 및 부원들은 대부분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에 임했습니다. 그렇게 안전을 강요하면서 왜 정작 그들은 안전모를 쓰지 않는 것일까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었지만, 아직 제가 어리고, 경험이 없으니까 그런 것이겠지 하며 별 것 아니라고 넘겨버렸습니다.
어느덧 승선한지 약 6개월이 지나고, 이번에 마지막으로 중국 상하이에서 하역 작업을 한 후에, 드디어 집으로, 한국으로 입항하게 되었습니다. 거의 반년이라는 시간 동안, 처음에는 낯설게만 느껴지던 것들이 점차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어느 정도 요령이 생기면서 긴장이 풀려나가더니 지금은 얼른 한국 땅을 밟고 싶은 생각에 긴장 따위는 어디에 가버렸는지 보이지도 않는 듯했습니다. 매일 같이 쓰고 다니던 안전모도 지금이 돼서야 생각해보니 왜 그 때 다른 사관들이 안 쓰고 다녔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 덥고 시끄러운 기관실에서 안전모를 쓰고 작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었기 때문입니다. 작업 중에 안전모가 흘러내리기 일쑤였고, 좁은 곳에서 작업 할 때는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그렇게 처음 내 목을 꽉 조이고 있던 안전모 끈은 지금은 느슨해진 것도 아니고 그냥 아예 사라져 버렸습니다. 비단 저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의 안전모에는 먼지만 소복이 쌓여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한국 가기 전 마지막 항구인 상하이에 입항했습니다. 메인엔진의 연료분사펌프를 교환할 시기가 되었기에 이번 정박 작업 시에 교환할 준비를 해놓으라는 기관장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연료분사펌프를 들어올리기 위해 기관실 내 크레인을 점검하고, 체인블록과 각종 공구들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일등기관사, 삼등기관사과 함께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분해 작업을 다 해놓고, 크레인을 체인블록과 연결 후, 최종적으로 연료분사펌프와 연결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일등기관사의 지시를 따라 천천히 크레인을 작동하여 펌프를 들어 올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쉽게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체인블록을 해체한 후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점검하는 중이었습니다. 그 때 뭔가 쿵하며 떨어지는 굉음이 들렸습니다. 무리하게 크레인을 사용하면서 체인블록이 과도한 장력을 받아 손상되어 끊어진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체인이 하마터면 그 근처에서 일등기관사를 보조 하고 있었던 삼등기관사의 머리 바로 위로 떨어질 뻔 했던 것이었습니다. 일등기관사는 창백한 표정으로 삼등기관사를 바라보았고, 정말 운이 좋았으니 다행이지, 그 당시 삼등기관사는 안전모를 착용하고 있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만약에 머리 위로 떨어졌었더라면 정말로 끔직한 일이 발생했었을 것입니다. 만약 안전모를 착용하고 있는 상태여도 엄청난 부상이 예상되는 그런 장면이었습니다. 물론 일등기관사의 작업 진행에서 비스듬히 탑재되어 있는 연료분사펌프를 수직방향으로 무리하게 들어 올리려고 한 부분도 사고의 원인이 되었지만, 무엇보다 여기서 모든 작업자들이 안전모를 쓰지 않고 작업에 임했다는 것 자체가 아주 큰 실수였습니다. 그 장면을 위에서 감독하고 있었던 기관장은 도대체 무슨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것이냐며 소리쳤고, 물론 그 날 이후로 본선의 모든 작업자들은 작업 시에 항상 안전모를 착용하게 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사건이 일어 난지 며칠 지나지 않아 또 하나의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삼기사가 냉동기의 벨트를 교체하는 작업에서 장력이 걸린 벨트가 끊기면서 터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 때 터진 벨트가 삼등기관사의 머리를 강타하여 삼등기관사가 안전모와 함께 날아가며 경미한 부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만약 이 전의 사고가 일어나지 않아서 선내에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는 문화가 그대로 이 날까지 있었다면, 지금 삼등기관사는 과연 어떻게 됐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직한 일이 일어났을 것 입니다.
물론 위의 사례들은 정말 운이 좋게도 큰 인명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목숨을 잃는 최악의 상황까지도 갈 수 있었던 아주 위험한 순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대부분의 상선에서 기관사들이 안전모를 특히 소홀히 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각종 작업 시에 항상 안전에 대한 부분을 신경 쓰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나 많은 해기사들이 안전모에 대해서는 조금의 관심도 주지 않는 듯합니다. 불편하고, 덥고, 짜증난다는 이유만으로 안전모를 저 멀리 내팽겨 친 채로 작업을 수행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저의 기억을 되돌아 봤을 때는, 각종 검사관들이 올라와서 선내를 검사하는 경우를 제외 하고는 안전모를 쓰고 작업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듯합니다. 외부 검사관들에게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하니 그 때야 안전모를 착용하는 것은 정말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이제는 이런 끔찍한 사고로 이어질 뻔했던 위험한 순간을 직접 목격해봤기 때문에 기관실 혹은 각종 위험구역 내에서는 항상 안전모를 쓰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한 때는 덥고, 짜증나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저 또한 안전모를 저 멀리 두고 살아왔었지만, 너무나도 잘못된 행동이었다는 것을 지금이야 깨달았습니다. 선박 기관실이라는 특수한 상황, 그 어떤 외부인도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감시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어떻게 보면 악용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지금 당장은 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잠깐의 편리함을 위해, 우리의 안전을, 목숨을 담보로 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까지 괜찮았으니까, 앞으로도 괜찮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이 우리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위험은 생각보다 멀리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턱을 단단히 조여 매고 있어야 할 안전모의 끈이, 오래된 무관심 속에서 언제 우리의 목을 조여 매올지 모릅니다. 우리 모든 해기사, 특히 기관사들이 우리의 생명 끈을 조금 더 단단히 동여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항상 기억해야합니다. 우리가 안전해야, 대한민국의 물류가 안전할 수 있고, 대한민국의 국민이 안전할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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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선시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고 작업하다가 발생된 사고 및 경험한 내용들을 통해 안전에 대해 좀더 신중하고 진지하게 생각해보자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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