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상 (전용언) > 2015년 체험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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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해양안전 공모전 입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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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수상 (전용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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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알수록 무서운 놈, 바다
전용언
`알면 알수록 더 무서운 놈`
정년퇴직을 목전에 둔 해경 직원은 바다를 늘 이렇게 불렀다. 해경으로 23개월의 군복무를 하는 동안, 나는 그 말을 실감했다. 바다 위에서든, 뭍에서든, 바다에는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해경으로 군복무를 시작했던 2013년 겨울, 바다와의 첫 만남은 설렘이었다. 21년을 줄곧 바다와 동떨어진 대전에서 살았던 나에게 바다는 낯설었고, 무지한 만큼 두려움도 없었다. 소형 함정으로 첫 번째 전입을 받은 이후, 맞선임과 함정 직원들이 가장 먼저 한 건 내가 바다를 무서워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어떤 기능을 하고 무엇 때문에 위험한 지를 당부했다. 배를 육상에 묶어두는 밧줄 하나도 언제든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몇 번이고 반복해 들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나서야 바다를 두려워하기 시작했고, 그 덕분인지 7개월간의 함정생활을 안전하게 마칠 수 있었다.
해경으로 군복무를 하면서, 나는 두 번의 여름을 보냈다. 첫 번째 여름은 연포해수욕장이었다. 태안 변두리에 위치한 연포는 소담하고 조용한 곳이었다. 가족 단위의 소규모 피서객이 오는 그곳에서 나는 `안전요원`이라는 글씨를 옷 여기저기에 붙이고 호루라기를 불며 사람들을 통제했다. 근무는 어렵지 않았다. 넓지 않은 해수욕장에 해경뿐만 아니라 적십자에서 파견된 열댓 명의 인원과 수상오토바이까지 있었기에, 근무 시간도, 근무의 강도도 낮은 편이었다. 뜨거운 햇빛을 맞으며 어제와 다르지 않은 매일을 보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처음 훈련을 받았을 때의 기합도, 근무에 대한 집중도 서서히 옅어지기 시작했다. 사고는커녕 사고 비슷한 것 하나 일어나지 않았던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일이 터졌다. 원인은 방심이었다. 해수욕장 한 가운데에 위치한 망루에 앉아있던 나는 바람에 떠밀려 가는 튜브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고, 그 튜브를 따라 물속으로 점점 깊이 따라 들어가는 아이 또한 보지 못했다. 어디선가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왔고, “사람이 빠졌어요.”, “사람 살려!”라는 고함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물 아래로 잠겼다가 떠오르기를 반복하는 아이가 보였다. 다행히도 가까이 있던 수상 오토바이가 아이를 구조했다. 해안으로 옮겨진 아이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우리는 사전에 교육받았던 대로 긴급처치를 실시했다. 큰 부상은 없었지만 놀란 아이를 진정시키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날의 사고로 우리는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여름철 해수욕장에서는 수많은 종류의 사고가 일어난다. 그 중에서도 튜브나 물놀이용 매트 위에 누워 있다가 먼 바다까지 바람에 떠밀려 가는 경우가 가장 흔하고, 위험한 사고 유형이다. 날마다 바뀌는 밀물의 정도와 시간, 수시로 바뀌는 바람의 방향 탓에 언제 어디서 사고가 일어날 지 예측할 수 없다. 그저 해수욕장 이곳저곳에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는 것만이 유일한 예방책이었다. 한 번의 사고로 기합이 잔뜩 들었던 덕분인지, 그 해 여름은 더 이상의 큰 사고 없이 안전요원으로서의 근무를 끝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일 년 후, 천리포 해수욕장에서 두 번째 여름을 맞이했다. 태안에서 가장 크고 사람이 많은 만리포 해수욕장과 언덕을 경계로 자리한 천리포 해수욕장에는 주로 작은 규모의 캠핑객과 낚시꾼들이 찾아왔다. 나는 그 곳에서 천리포 출장소 소속 의경으로 근무하며 해수욕장, 방파제, 갯바위 등 관내 지역을 순찰하는 일을 맡았다. 천리포 해수욕장은 경사가 완만하고 사람이 많지 않아 해수욕객에게 일어나는 사고는 전무했다. 오히려 테트라포드(방파제)와 갯바위를 밤낮으로 오가는 낚시꾼들이 문제였다. 그들은 물고기가 더 많은 곳, 조금 더 잘 잡히는 곳을 찾아 파도가 닿을 듯 말듯 한 곳에 겁도 없이 자리를 잡았다. 썰물 때 건너간 갯바위에서 밀물 시에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낚시꾼들의 신고를 받아 출동 하는 경우가 잦았다. 특히 밀물이 진행된 지 한참이 지나서야 신고를 한 경우에는 파출소에서 출동한 구명정으로도 구조를 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갯바위 주변에는 암초가 많을 뿐만 아니라 파도가 높아 자칫하면 충돌 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높았다. 관내를 돌아다니며 만나게 되는 낚시꾼 한 명 한 명에게 안전을 당부했지만, 갯바위 고립 사고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했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야간이면 더욱 위험한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한 번은 테트라포드 사이로 사람이 추락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홀로 야간 낚시하던 사람이 장소를 중 미처 틈새를 보지 못하고 떨어져 발생한 사고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주변에 있던 낚시꾼들이 소리를 듣고 해양경찰과 119에 신속하게 신고를 했다. 출장소 소장님과 나는 출장소에 있는 플래시를 모두 들고 현장에 도착했다.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플래시를 비추자 3미터 아래쯤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곧이어 119구급대가 왔고, 안전하게 구조되어 병원으로 보내졌다. 방파제 추락 사고는 자칫하면 사망이나 실종에 이를 수 있다. 단단한 테트라포드에 머리를 부딪치면 생명과 직결되는 충격을 입거나 의식을 잃게 된다. 설사 머리를 피해간다 하더라도 뼈가 부러져 움직일 수 없거나, 주변에 사람이 없어 미처 발견되지 못한 채 실종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참 다행이었다. 주변에 있던 낚시꾼들의 신속한 대처 덕분에 팔과 다리에 찰과상을 입은 정도로 끝날 수 있었으니까. 그날 이후로 방파제 주변에 `접근 금지`가 쓰인 폴리스 라인을 설치했고, 추락 사고는 한동안 일어나지 않았다.
인력은 한정돼 있고 관리해야 할 지역은 넓으니, 관할 방파제, 갯바위 부근 등 사고 다발 지역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무탈(撫夷)이 문제가 됐다. 이용객이 적고 비교적 안전하다고 판단했던 천리포 해수욕장 부근에서 성인 남자가 물에 빠져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사람이 발견하지 못해 일어나는 보통의 익사 사고와는 달리, 사고 지점 주변에 수많은 목격자가 있었다. 근처 갯바위에서 사고를 목격한 낚시꾼들은 ‘장난 때문에 일어난 사고’라고 입을 모았다. 아이의 아버지는 물속에서 “사람 살려!”를 외치며 아이와 장난을 쳤다고 했다. 주변에서 낚시를 하던 사람들은 그 장난을 실제 사고로 오해하고 몇 번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장난이 반복되면서 사람들은 관심을 두지 않았고, 실제로 물에 빠져 ‘사람 살려`를 외칠 때조차 장난인 줄로만 알았다. 때문에 신고와 구조가 늦어졌고, 되돌릴 수 없는 비극이 되었다.
해경으로 입대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바다를 `무섭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피서를 위해 갔던 여름철의 바다, 아버지와 밤낚시를 즐겼던 밤바다는 낭만적이기만 했다. 하지만 즐기는 게 아니라 지켜야 하는 입장에서 보고 나니, 사람들의 안전 불감증은 벼랑 위에서 한쪽 발만 딛고 서있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아슬아슬하다. 가끔은 재미를 위해 안전을 포기하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30년이 넘도록 배를 운전했다는 무지개호 선장님도, 수영선수 출신인 해양경찰도 바다를 두려워한다. 해상이든 뭍에서든, 바다에는 사고의 위험성이 언제나 산재한다. 바다는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다. 순간의 방심이 곧 사고로 이어지는 바다에서, 가장 필요한 건 바다에 대한 두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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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으로 군복무를 하면서 겪었던 사건과 안전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바다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자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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